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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삼국지에서 말하는 소패왕 손책의 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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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0vL0z272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19-09-15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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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정사 삼국지에서 나타나는 손책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다만, 손책에 대해 전부 작성하기에는 다들 어느정도는 알고있는데다,
내용이 지나치게 길어지기 때문에, 인성을 보여주는 일화 몇몇만 소개하겠습니다.

또한, 모든 번역은 파성넷을 참고해보고있습니다.
파성넷에서 번역해주시는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삼13 손책.jpg 정사삼국지에서 말하는 소패왕 손책의 인성
- 삼국지 13 손책 일러스트 -


<원술 투탁 시기> - 죄를 지은 병사를 죽이고 살해하다

손책의 기병 병사가 죄를 짓고는 원술의 진영으로 도망쳐 들어가 안쪽 마구간(內廐)에 숨었다.
손책이 사람을 시켜 가서 참수하게 하였는데, 일이 끝난 후 원술에게 가서 사과하였다.
원술이 말하길 “병사들은 반란을 일으키기 좋아하는데, 응당 같이 그런 자를 미워해야지,
어찌해서 사과까지 하오?” 라 했다. 이로 인해 군중의 사람들이 더욱 그를 두려워 꺼려했다.
- 손책전

이 때 원술은 엄연히 손책의 상관이었는데,
그 상관의 마구간까지 침범해 병사를 참수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병사가 어떠한 죄를 지었는지는 모르나 고대 군법은 대부분 사형이 규정이고,
죄를 짓고 마구간에 숨은 것도 정상은 아니기는 합니다만,
다음 일화들을 보아도 손책은 사람을 주살하기를 즐기듯이 합니다.
여담으로, 원술도 이때 오히려 동조하는게, 물론 이해관계에는 부합하겠지만,
군중에서 그를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왕랑 격파 시기> - 왕성(王晟)의 일가를 주살하다

이때 오정(烏程) 출신의 추타(鄒他), 전동(錢銅) 및 전 합포(合浦)태수인
가흥(嘉興) 출신 왕성(王晟) 등이 각각 만여 명 혹 수천여명을 무리를 모으고 있었다.
병사를 이끌고 쳐서 토벌하여, 모두 다 공파하였다.
손책의 모친 오씨(吳氏)가 말하길 “왕성과 네 아버지는 당에 올라 처를 보게 된 일이 있는데,
지금 그분의 자식과 형제들은 모두 효수되고, 홀로 늙은이 혼자 남았는데, 어찌 다시 협박할 수 있겠느냐?”
라 했으나, 놔두고 가서는 나머지 일족들도 모두 주살했다. - 손책전에서 오록 인용

여기서의 모친 오씨는 매체에서 흔히 보이는 계모 오국태가 아니라,
후에 무열황후로 추존된 손책과 손권의 친모입니다.
여기서 어머니(오씨)는 자식(손책)에게 왕성(王晟)은 아버지(손견)과 친한 사이였고,
자식과 형제를 이미 효수했으니 봐달라라고 부탁합니다만,
 차마 어머니때문에 왕성까지 참하지 못했던게 얼마나 분개했던지
나머지 일족들도 모두 죽여버린다는 일화입니다.
(죽일수 없다면,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안겨주겠다는건가)


<엄백호 격파 시기> - 엄여(嚴輿)를 살해하다

삼13 엄여.jpg 정사삼국지에서 말하는 소패왕 손책의 인성
- 삼국지 12, 13의 엄여 일러스트 -

손책이 직접 백호를 토벌하였는데, 백호는 성루는 높이고 견고하게 수비하며,
그의 아우 엄여(嚴輿)를 보내 화의를 청하게 했다. (손책이) 이를 허락했다.
엄여는 혼자 손책과 대면할 약속을 청했다. 만나게 되자,
손책은 날이 시퍼런 칼을 빼들고 좌석을 부수었는데, 엄여가 몸을 움직이자,
손책이 웃으며 “듣자하니 경은 자리에 앉아서 잘 뛸 수 있다던데, 날랜 것이 평상시만 못하니,
오로지 경을 희롱한 거였구려!” 라 하니, 엄여가 “내가 칼날을 보고 그랬소.” 라 했다.
손책이 그의 무능함을 알고, 이에 손에 쥔 창을 그에게 날리니, (엄여는) 서서 죽었다.
엄여는 용맹함과 힘이 있었는데도, 엄백호는 그가 죽은 것을 보고는 심히 두려웠다.
엄백호를 공파했다. 엄백호는 여항(餘杭)으로 달아나서, 도적 무리 속의 허소(許昭)에게 투탁(投託)했다.
- 위의 기사와 동일한 출처

삼국지를 즐기는 많은 유저들에게 사랑받는 덕왕 엄백호를 토벌하면서
(엄백호에 대해서는 다음에 별도로 작성할 기회가 있을듯)
엄백호는 성벽에 올라 수비만 하면서, 동생 엄여를 사자로 보내 화친을 청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 동생을 직접 사자로 보냈다는건
그만큼 상대 세력(손책)에 대해 나름 예우를 갖추려 노력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손책은 엄여를 만나는 자리에서 다짜고짜 검으로 의자를 부수고,
거기에 더해 너 쫄았냐 하면서 창을 날려 엄여를 살해합니다.
당대에도, 지금 관점에서 보아도 너무 어이없는 일이기 때문에,
삼국지 기반 창작물들에서는 최후를 각색하기도 합니다.
다만, 삼국전투기 같은 창작물에서는 이 기사를 반대로 왜곡해,
엄여가 손책의 세력을 흡수하려 먼저 공격해 손책이 죽인 정당방위라고 묘사하니
(다짜고짜 살해당한 피해자를 창작물이라지만 가해자처럼 표현)
그저 죽은 엄여만 불쌍할 따름입니다.


<유훈 토벌> - 동맹을 맺어놓고 빈집털이

손책이 이를 듣고서, 거짓으로 유훈과 동맹관계를 맺었다.
유훈은 새로이 원술의 병력을 얻은 데다, 이때
예장(預章) 상료(上繚)의 일족의 백성(종민(宗民)?) 1만여 가(家)가 강동(江東)에 있었는데
손책이 유훈에게 이들을 공격해 취하라고 권했다.
유훈이 움직이자, 손책이 날랜 병사들도 밤낮으로 달려 여강을 기습하고 함락시키니,
유훈의 병사들은 모두 다 항복하고, 유훈은 혼자서 휘하의 수백 명과 함께 조공에게 귀의하였다.
- 손책전

팽택(彭澤)에서 유훈을 기다리게 하고,
자신은 주유와 함께 2만 명을 거느리고 걸어서 환성을 급격하여 곧 함락시켜서
원술의 수많은 공인(工人) 및 고취(鼓吹) 부곡 3만여 명과 아울러 원술과 유훈의 처자식을 사로잡았다.
표를 올려 여남태수 이술(李術)을 여강태수로 등용하는 한편
병사 3천 명을 주어 환성을 지키게 하였고, 나머지 모두 잡았던 사람들은 동으로 오군으로 가게 했다.
- 손책전에서 강표전 인용

다른 일화들과는 달리, 당시 시대를 생각하면 다소 평범한 일화이기는 합니다.
동맹 맺어놓고 빈집털이하는건, 시대가 시대이고,
인덕의 유비조차 희대의 사기극으로 유장을 먹었으니까요.

다만, 재밌는 점은 과거 자신의 상관이었던 원술의 처자식을 잡은 점인데
이미 원술이 죽은 시기라서 일족에게 돌려보내기도 애매한 시기이기는 하나,
잡은 포로 중 하나인 원술의 딸을 동생 손권의 후궁으로 보내버립니다..
물론 손책이 원술 휘하에서 원망할만한 일도 있었고, 지금 상관은 아니기는 하지만
그 상관의 딸을 동생에게 기념으로 가지라고 주었으니, 원술이 살아있었다면 통탄할 일입니다.

진삼국무쌍 원부인.png 정사삼국지에서 말하는 소패왕 손책의 인성
- 여담으로 이 인물은 진삼국무쌍에 와서 무장으로 등장합니다. 해당 일러스트 -


<은거한 학자 고대(高岱)를 주살하다>

고대의 자는 공문(孔文)으로 오군 사람이다.
타고난 성품이 총달(聰達)하여, 재물을 가벼이 하고 의를 귀하게 여겼다.
그의 벗들은 발군으로 빼어났는데, 현달(顯達)하지 않았을 때 사귄 8명은 모두 세상의 뛰어난 인재였다.
태수 성헌(盛憲)을 위해 계책을 올린 적이 있어,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었다.

그가 『좌전(左傳)』을 잘한다는 말을 듣고, 이내 자신을 독서로 희롱하며 강론하고자 했다.
어떤 자가 말하길 “고대는 장군으로써 다만 영무(英武)할 뿐이지 문학의 재주는 없으며,
만약 같이 『좌전』을 논한 게 되어 혹 모른다고 말하면, 모(某)는 부합한다고 말하십시오.” 라 했다.
또 고대에게 이르길 “손장군은 사람됨이 자기를 이기는 것을 싫어하니,
만약 매번 물으면 마땅히 모른다고 말해서, 그의 뜻에 부합해 주십시오.
만약 모든 것에 문의(文義)를 변론한다면, 이것이 필히 위태로워 질 것입니다.“

고대가 이 말을 옳다고 여겨, 『좌전』을 논하게 되었을 때, 간혹 모른다고 답했다.
손책이 과연 노하여 자신을 가벼이 여긴다 하여, 이내 그를 가두었다.
벗들과 당시 사람들이 모두 맨 자리에 앉아서 그를 위해 청했다.
손책이 누각에 올랐는데, 수 리 안이 가득 매워져 있는 것을 보았다.
손책은 그가 뭇사람들의 마음을 거둬들인 것을 싫어하여, 마침내 그를 죽였다.
- 손책전에서 오록 인용

요약하자면, 고대는 손책이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는 것을 듣고 봐주다가
손책이 나보고 장난치냐하면서 가둬버렸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를 구명하는 것을 보고, 빡쳐서 죽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손책은 인기가 많은 사람을 질투해 매우 싫어했는데,
다음으로 제시할 우길의 일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의의 우길 나이트메어 - 우길을 죽이다>

「당시 도사(道士)인 낭야(琅邪) 사람 우길(于吉)이란 자가 있었는데,
앞서는 동쪽에서 우거(寓居)하다가,오회 사이를 왕래하며 정사(精舍)를 세우고, 이르길 선인화(仙人鏵)라 하고,
탁문(度門) 아래로 왔다.
 
(그러자) 여러 장수와 빈객들 중 3분의 2가 누각을 내려가 그를 영접하고 절하니,
빈객을 담당하는 자가 금하며 질책했으나, 그치게 할 수 없었다. 
손책이 영을 내려 그를 잡아오게 하였다. 그를 섬기던 여러 사람들이 모두 다 부녀자들을 시켜
들어가 손책의 모친을 뵙고, 그를 구해주도록 청하게 했다.
 
모친이 손책에게 말하길 “우선생은 또한 군대를 돕고 복을 지었고, 장사들을 치료하고
보호하였으니, 죽여서는 안 된다.” 라 했다.
손책이 말하길 “이 자는 요망한 자로, 뭇사람들의 마음을 능히 현혹하여,
멀리는 여러 장수들이 가시는 군신의 예를 서로 돌아보지 않게 하여,
모두가 이 손책을 내버리고 누각 아래로 내려가 절하게 하였으니, 없애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손책이 곧 참수하라고 재촉하고는, 시장에다 목을 내걸었다.
그를 섬기던 여러 사람들이 아직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시체만 남겨두고
혼백은 빠져 나가 신선이 된다(尸解)고 말하면서, 다시 제사를 하고 복을 구하였다.
- 손책전에서 강표전 인용


손책이 장강을 건너 허도를 습격하고자 하여 우길과 함께 길을 갔다.
이때 크게 가물어 가는 곳마다 두텁고 괴로웠다.

손책이 여러 장수와 관리, 병사들을 재촉해 빨리 배를 끌고 오게 하고는,
혹 자신이 일찍 나와 감독하다가, 장수와 관리들이 우길 부근에 많이 있는 것을 보고,
손책이 이 때문에 격노하여 “내가 우길만 못해서 먼저 그에게 가는 것을 일삼는가?” 라 했다.
바로 우길을 붙잡아 들이게 했다.

그가 오자 꾸짖어 묻기를 “날씨가 말라 비가 오지 않고, 길에는 고생이 많아,
때맞게 지나가지 못하여서, 그래서 내가 일찍 나왔는데, 경은 그 근심을 같이 하지 않고,
배 가운데 앉아서 귀신같은 물건을 만들고 있으니, 내 군대를 패배하게 하는 것은
지금 마땅히 없애라.” 고 했다.

사람을 시켜 포박하여 땅 위에 두어 햇빛에 드러나게 하고는, 비를 빌게 하면서,
만약 하늘과 감응하여 한낮 중에 비가 내리게 하면 응당 사면할 것이나, 그러지 못하면 주살할 것이라 했다.
갑자기 구름의 기운이 위로 모여 약간 정도만 합치더니, 대낮 중 즈음이 되자,
큰 비가 한꺼번에 내려 계곡이 가득 찼다. 장수와 병사들은 기뻐하며 우길이 반드시 구원될 것이라 여겨,
아울러 가서 경축하고 위로하였다.

손책이 끝내 그를 죽였다.
장수와 관리들은 슬퍼하며 함께 그의 시체를 묻었다.
밤이 되자, 홀연히 다시 구름이 일어 그 위를 덮었는데,
다음날 아침 가서 보니 (그 시체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했다.」고 한다.
- 손책전에서 수신기 인용


강표전과 수신기에서 우길을 죽이는 사건이 다르게 묘사되기는 합니다만,
핵심은 같습니다. 여러 관리, 장수, 병사 등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그걸보고 포박했다가, 무수한 구명요청을 받자 빡쳐서 죽여버렸다는 것.


<결론>

종합해보면, 용맹하고 호탕해보이는 손책에게는 인격적인 결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일화를 정리해보면,
죽여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디에 숨어있건 찾아가 죽였으며,
자신보다 약하고 만만하다고 생각하면 뜬금없이 죽였고,
과거 상관의 딸은 예우하지는 못할 망정 기념 선물로 동생에게 주고,
그게 무서워서 논쟁에서 봐줘도 죽이고,
사람들이 많이 따르는 인기인이면 질투해서 죽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부전자전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손견 역시 사람을 죽이기를 함부로했는데, 문제는 이 죽인 사람들이
반동탁연합군에 연합군으로 참전한 지방관급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정치적 비난에서 보호받기 위해, 원씨의 종가였던 원술 셔틀을 자청합니다.

동생 손권은 이 아버지와 형을 보고 느낀 점이 많았는지
말년에 맛이가는(사실 이게 본성인지도 모르겠지만) 이궁의 변 시기 전까지는
둘과는 달리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는 않았습니다만,
앞서 소개한 술취한척 했다고 우번을 직접 죽이려던 일화 등을 보면
대를 이어 내려오는 살재(殺材)는 어디가지 않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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